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것은 언제나 꿈의 막바지에 진해지는 감정의 엑기스였다. 꿈속에 얼키설키 엮여 있었던 감정들이 한 올 한 올 풀려나고, 그 풀려났던 것들은 차가운 물에 오래 잠겨있었던 듯 꿈의 끝에서 한없이 불어나는 것이다. 꿈의 정황은 기억 속에 사라진대도 감정의 한 오라기만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남아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때에 보풀처럼 일어난다.
그렇게 오늘 아침은 외로움을 느꼈다. 본 적은 없지만 익숙한 어느 한국의 거리를 헤맬 때엔,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별로 친하지 않았던 반 친구가 야들야들한 떡꼬치를 건네주었을 때엔 몰랐다. 처음 만난 겨울 거리에서 익숙함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좋아하지 않았던 주전부리가 반가운 건 어떤 감정인지.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감각들이 하나둘 꺼져갈 때서야, 그렇게 현실로 돌아올 때서야 알았다. 꿈속에서 나를 숨 가쁘고 뭉클하게 하던 것은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꿈속에서 나를 존재시켰던 오감이 사라지고 현실 세계의 그것이 다시 스며들 때까지 감정만 남은 시공간에서 나는 그렇게 뒤척였다. 진한 외로움의 엑기스 속에서 허우적댔다.
20대 중반, 어른이라고 칭해지는 게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이즈음, 익숙할 수 없는 거리에서 나는 친근함을 느꼈고 외로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 악몽들이 남겼던 두려움이 아직도 씁쓸히 감도는 것처럼 오늘의 외로움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비교적 행복했던 이 꿈을 악몽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잠시 고민을 한다. 공교롭게도, 꿈속에서의 하늘처럼 이곳의 하늘도 긴긴 추위와 눈보라를 이겨내고 마침내 푸르다.
2017년 2월 18일 뉴욕주 이타카에서